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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박테리아도 튜링테스트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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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지 60년이 되는 2014년 개봉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활약을 중심으로 튜링의 삶을 그린 영화다. 그런데 사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에니그마가 아니라 오늘날 ‘튜링 테스트(Turing test)로 불리는, 튜링이 1950년 발표한 논문에서 사용한 용어다.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튜링은 한 발 벗어나(‘생각’에 대한 정의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기능적 측면에 주목했다. 즉 어떤 사람이 모니터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계였다면 기계가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모방게임(imitation game)을 제안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한 것이다.


지난 2014년 ‘유진 구스트만’으로 불리는 인공지능이 튜링 테스트에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화제가 됐다. 그리고 어느덧 암환자가 전문의보다 인공지능의 치료계획을 더 선호하는 시대가 됐다. 이제 튜링테스트는 검증된 가설로 과학사에서나 나오는 용어가 된 것일까.

 

 

10여년 전 컴퓨터과학자가 개념 제안

 

앨런 튜링이 1950년 제안한 이미테이션게임(튜링테스트)는 기계(인공지능)가 스크린을 통해 사람(검사자)과 대화를 나눈 뒤 상대가 사람이라고 판단할 경우  기계도 생각을 한다고 볼 수 있다는 설정이다(위).

2005년 컴퓨터과학자 다비드 하렐은 인공세포(chell)가 세포(검사자)와 소통을 한 뒤 상대가 세포라고 판단할 경우 인공세포도 생명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아래).

최근 인공세포로 세포 튜링테스트를 수행해 생명도가 39%라는 연구결과를 얻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 네이처 생명공학 제공


2005년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의 컴퓨터과학자 다비드 하렐 박사는 학술지 ‘네이처 생명공학’에 기고한 글에서 생물계에서도 튜링 테스트와 비슷한 설정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즉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역시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생명체를 대상으로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대신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포 튜링 테스트(cellular Turing test)의 경우 박테리아 같은 진짜 세포가 인공세포를 진짜로 착각해 신호를 주고받는다면 그 인공세포는 세포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보자는 것이다.


이 제안이 나오고 12년이 지나 인공세포가 간단한 세포 튜링 테스트에 반은 통과했다는 연구결과가 학술지 ‘ACS 센트럴사이언스’에 실렸다. 이탈리아 트렌토대 연구자들은 박테리아가 보내는 신호를 인지하고 거기에 맞춰 박테리아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인공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이들이 주고받은 신호는 ‘균체밀도 감지(quorum sensing)’와 관련돼 있다. 세포 하나로 이뤄진 생명체인 박테리아는 고독한 생명체 같지만 사람처럼 무리를 이루는 걸 좋아한다. 따라서 주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화학물질(신호)를 내보내고 주변에서 오는 신호를 받는다. 그 결과 개체 밀도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됐다고 판단하면 집단행동에 들어간다. 가장 흔한 결과가 생물막(biofilm) 형성으로, 치아에 낀 치석이 바로 구강미생물이 만든 생물막이다. 한편 비브리오 피셰리(Vibrio fischeri)라는 해양 박테리아는 밀도가 높아지면 빛을 낸다.


그렇다면 박테리아가 동료로 착각한 인공세포는 어떻게 만든 것일까. 먼저 인공세포와 합성생물체는 다른 종류다. 지난해 3월 미국 크레이크벤터연구소는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박테리아보다도 게놈 크기와 유전자 개수가 적은 합성생물체 ‘JCVI-syn3.0’을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해 화제가 됐다. 53만 여 염기로 이뤄진 게놈에 유전자 473개로 이뤄진 이 합성생물체는  비록 게놈은 화학적으로 합성했지만 어디까지나 진짜 생명체다. 즉 스스로 유전자를 발현하고 대사하고  복제로 숫자를 늘릴 수 있다.

 

 

진짜 생명체는 아니지만…

 

인공세포 모식도.

위는 기름 속에 있는 물방울 형태(w/o emulsion)이고 아래는 수용액에 있는 리포솜 상태다.

인공세포 안에는 유전자를 담고 있는 작은 게놈(DNA)과 ‘전사/번역 시스템’(ribosome, tRNA)이 들어있다.

- COCB 제공


반면 인공세포( artificial cell)은 세포를 모방했을 뿐 진짜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니다. 세포막과 비슷한 지질막으로 이뤄진 리포좀(liposome) 안에 유전자 몇 개로 이뤄진 짧은 게놈이 들어있고 이 유전자를 발현시켜 단백질로 번역할 수 있는 ‘전사/번역 시스템’이 들어 있는 게 전부다. 따라서 단백질을 만드는 일(대사에 해당)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지만 세포분열은 커녕 시간이 얼마 지나면 깨져 사라질 운명이다.


그렇다면 왜 합성생물을 만드는 시대에 인공세포를 연구할까. 물론 합성생물의 성과는 대단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먼저 통째로 합성한 게놈 스스로가 살아갈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즉 게놈을 뺀 박테리아 안에 합성게놈을 넣어줘야 생명으로 바뀐다. 즉 게놈만으로는 주변에 아무리 재료가 많아도 세포막 같은 구조를 형성할 수 없다는 말이다. 또 최소한의 유전자를 지닌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줄이고 줄인 유전자 473개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149개는 아직 그 기능을 모르고 있다. 즉 이들 유전자가 하나라도 없을 경우 생명체가 될 수 없다는 것만 확인한 수준이란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공세포는 박테리아의 대사나 소통 등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호의적인 장내미생물 환경 조성에 쓰일 수도

 

인공세포에서는 진짜 세포처럼 유전자가 발현돼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형광단백질이 붙은 알파-헤몰리신 단백질이 만들어진 경우로 세포막이 밝은 녹색이다.

위는 인공세포 두 개가 붙어 있는 상태이고 아래는 여러개가 거품처럼 붙어있는 상태다.

- PNAS 제공


연구자들은 인공세포의 게놈에 박테리아가 내놓는 균체밀도 신호분자를 인식할 경우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균체밀도 신호분자를 만들게 유전자를 배치했다. 참고로 신호분자는 지질로 이뤄진 인공세포막을 통과할 수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조합에서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만든 게놈 가운데 흥미로운 예로는 어떤 종의 균체밀도 신호분자를 인식하면 다른 종의 균체밀도 신호분자를 만들게 구성된 것이다. 이 경우 자연상태에서는 서로 소통을 하지 않는 박테리아 두 종이 인공세포를 매개로 소통할 수도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연구자들은 비브리오 피셰리가 내놓은 3OC6 HSL에 반응해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이 인식하는 3OC12 HSL을 만드는 게놈을 지닌  인공세포가 제대로 작동함을 보였다.


한편 인공세포를 잘 디자인하면 자연의 균체밀도 경로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회주의적인 병원체인 녹농균의 균체밀도 신호분자를 인식하면 이를 파괴하는 효소를 만들어 분비하는 인공세포가 제대로 작동하면 녹농균은  아직 활동할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조용히 지낼 것이다. 녹농균의 균체밀도 신호분자를 인식할 수 있게 조작한 대장균을 대상으로 테스트한 결과 인공세포가 없을 경우 90%가 신호분자에 반응한 반면 인공세포가 있을 경우 18%만이 반응했다. 인공세포의 억제효과가 꽤 된다는 뜻이다. 이런 결과들은 인공세포를 써서 유해한 박테리아의 생물막 형성은 억제하고 유익한 박테리아의 생물막 형성은 촉진해 장내미생물의 조성을 바꾸는 일도 가능함을 시사한다.

 

 

튜링테스트 결과는 39점?

 

해양 박테리아인 비브리오 피셰리는 균체밀도 신호분자를 교환해 밀도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됨을 확인하면 빛을 내놓는다.

최근 이 과정에 인공세포를 개입해 발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케니언칼리지 제공

 

박테리아들이 인공세포가 내놓는 균체밀도 신호 분자에 반응한다는 위의 실험 결과들은 인공세포가 세포 이미테이션게임을 잘 수행했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닐까. 연구자들은 이를 점수화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즉 밀도가 낮아 발광을 하지 않는 비브리오 피셰리 배양액 세 곳에 각각 비브리오 피셰리, 신호에 반응해 신호를 내놓는 인공세포, 신호에 반응하지 않는 인공세포를 넣어줬다. 30도에서 3시간 배양한 뒤 발광 세기를 측정한 결과 비브리오 피셰리(진짜 동료)를 넣어준 경우가 가장 밝았고 기능을 하는 인공세포(가짜 동료)도 꽤 밝았다. 반면 기능이 없는 인공세포(동료로 인식하지 못함)를 추가한 쪽은 침침했다.


연구자들은 빛의 밝기가 아니라 비브리오 피셰리의 유전자 발현 패턴을 수치화해 세포 튜링 테스트의 점수를 매겼다. 즉 진짜 동료를 넣어준 경우와 가짜 동료를 넣어준 경우 유전자 107개에서 발현에 차이가 있었다. 한편 진짜 동료를 넣어준 경우와 기능이 없는 인공세포를 넣어준 경우는 175개에서 차이가 보였다. 즉 발현의 관점에서 신호에 반응해 신호를 내놓는 인공세포를 진짜 동료로 인식한 유전자는 68개란 말이다.  연구자들은 기능이 없는 인공세포의 ‘생명도(lifelike)’를 0%로 하면 기능이 있는 인공세포는 생명도가 39% (68/175)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천재 튜링이 만일 살아있어 이 실험결과를 지켜본다면 ‘세포 튜링 테스트’라는 용어를 쓰는데 동의할지 문득 궁금하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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